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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관점

작성일자 :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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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d-centered framework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관점

 

율법폐기론은 정통기독교에서 결코 용인되지 않는 주장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신약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도 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다.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이시다. 신약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얼마나 진노하시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사박다니,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신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던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 얼굴을 예수님으부터 돌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진노와 심판을 받으신 것이다. 사랑과 공의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속성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

 

혹 자는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기 때문에, 복음을 따르는 우리는 율법을 읽고 고려하고 적용할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일점일획도 폐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바울은 율법을 믿음으로 굳게 세운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율법의 정죄와 저주로부터 죽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십자가 안에서 율법의 정죄는 효력을 잃어버린다.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 8장의 말씀은 우리가 영으로 율법을 지킨다고 말씀하신다. 이를 총신대 신학대학원 서철원교수는 영으로 율법을 행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복음의 시대 우리는 성령의 은혜로 율법에 순종한다. 구약의 시대, 죄의 권능으로 인해 율법을 지킬 수 없었지만, 신약의 시대, 우리는 성령의 권능으로 죄를 이기고 율법에 순종한다.

 

*시민법, 제사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문자 그대로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그 근본정신은 신약시대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도덕법은 더 엄중해진다. 도덕법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지켜야 하는 율법이다.

 

 

존 칼빈은 율법은 세가지 용법에 대해서 교훈한다.

 

 

첫째, 율법은 죄를 죄로 규정하는 기능을 한다.

 

로마서 7장 7절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죄인지 규정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율법이 죄라고 하면 죄이다. 율법이 선이라고 하면 선이다. 율법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양심이라는 수단 외에는 선악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은 부부사이의 성관계를 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선이다.

성경은 동성 간의 성관계를 죄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죄이다.

 

 

둘째, 율법은 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 key point이다.

 

디모데전서 1장 8-10절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율법은 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이것이 법의 핵심포인트이다.

 

* 율법은 희미한 형태로 인간의 양심에 기록되어 있다.

로마서 2장 14절-15절 ‘율법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향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성문화된 율법을 알지못하는 이방인들로 율법이 있다. 그것은 그들의 양심이다. 그래서 존 파이퍼목사님은 ‘동성애자들도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직관이 마음 속에서 거부할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는 양심의 거리낌이다. 단지 거부하고 합리화할 뿐이다.

 

이태원에 최초의 게이바를 연 선구적 동성애자출신으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고 목사가 된 이요나목사님은 ‘동성애자들은 죄를 짓고 있는 줄 다 알고 있다’라고 국민일보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다.

 

* 양심 -> 국가와 사회법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천부적으로 주신 자연법인(natural law) 양심이다.

바로, 바로 하나님께서는 천부적으로 주어진 이 양심을 통해서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시는 것이다. 만약 양심의 존재가 없었다면, 인류는 벌써부터 멸망했을 것이다.

 

로마서 13장 3-4절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이니라’

 

국가는 하나님의 사역자이다. 국가는 법을 통해서 선을 증진하고, 악을 억제한다. 즉, 성경적 관점에서 법의 목표는 선을 증진시키고, 악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과 악의 절대적인 표준과 기준은 오직 성경이다.

 

ex> 많은 사람들이 탐심이 있다. 도둑질을 금하는 국가의 법이 있기 때문에 탐심이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억제된다. 만약, 도둑질을 금지하는 법이 없다면, 도둑질의 죄가 일파만파 퍼질 것이다. 즉 국가의 법은 댐의 수문 역할을 한다. 악이 나오는 곳에는 수문을 막는다. 선이 나오는 곳에는 수문을 연다. 그래서 악을 제어하고, 선을 배출하는 댐, 그것이 국가의 법이다.

 

만약 동성결혼 합법화가 시행된다면, 동성연애라는 성경이 분명히 금하는 죄의 수문을 국가가 법으로 여는 것과 같다. 동성애의 죄가 온 나라에 만연할 계기가 될 것이다.

 

국가는 법으로 악을 제어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의 법이 하나님의 법을 반영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 국가의 사회법의 절대적인 표준과 기준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하나님의 율법 -> 마음에 기록된 율법인 양심(타락으로 훼손된, 그러나 은혜로 보존된 양심) -> 사회법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회법의 원형은 하나님의 율법인 것이다. 이 땅의 법은 하나님의 법을 반영해야 하고, 하나님의 법에 봉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면서, 만물의 주권자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시다. 대한민국의 주인이시며, 대한민국 땅의 주인이시며, 대한민국 법의 주인이시다. 종은 주인의 법에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피조물은 당연히 창조주께 순종해야 한다.

 

 

셋째, 율법은 교훈하고 인도하는 기능을 한다.

 

시편 19편 7절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을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편 1편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알다시피 다윗은 결코 율법주의자가 아니다. 성령에 감동된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위와 같은 시편을 쓴 것이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조명을 받으며 율법을 읽을 때, 율법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내 안에서 살아서 역사한다. 완전한 율법은 내 영혼을 소성시키고, 지혜롭게 하고, 기쁘게 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도덕적 의지를 계시하고 있다. 무엇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무엇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지 전하고 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를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뜻에 복종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날마다 거룩함에 이르는 성화의 삶이다.

 

 

1. 선악과사건이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죄의 근본이다.

 

창세기 1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선악과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선악의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을 주신다. 첫사람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깨뜨린다. 그런 면에서 죄는 율법을 깨뜨린 것이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요한1서 3장 4절에서 말씀하신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선악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이 되어서 선과 악의 기준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서, 스스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보좌에서 내려오고, 내가 그 보좌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죄의 근본이며 시작이다. 그런 면에서 회개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나는 틀렸습니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부복하는 것이다. 말씀을 깨뜨린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이다. 물론 이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동성애 퍼레이드와 동성결혼 합법화의 시도가 함의하고 있는 악함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틀렸고, 나는 옳습니다.’라는 것이다. 선악과 사건의 재판이다.

 

회개의 의도를 가진 동성애자들, 회개하는 동성애자들, 죄를 인정하고 긍휼을 구하는 동성애자들은 용납하고 포용해야 한다. 십자가는 그들의 죄보다도 더 강하고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를 선이라고 말하며, 선을 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강하고 가장 높기 때문이다.

 

 

2. 소돔과 고모라는 왜 멸망했는가? 과연 한 사람의 동성애때문이었는가?

 

창세기 19장 4절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하나님께서 소돔땅에 두 천사를 보내신다. 롯을 구원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심판하시는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 보내시는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늘에서도 소돔 구석구석을 굽어살피시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창세기 18장 21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법정에서 소환, 심판하시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창세기의 독자들을 향해서 이런 소돔은 심판받아 마땅하지 아니한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분이 아니신가? 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중요한 구절은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이다. 원근에서 노소를 막론하고 다 모인 것이다. 이것이 소돔과 고모라의 영적 분위기이다. 한 명이 동성애를 해서 심판받은 것이 아니다. 온 사회가 동성애에 동참했고, 또 동성애를 죄라고 여기지 않는 사회의 영적분위기로 인해서 심판받은 것이다.

 

 

3. 성적 타락은 땅을 더럽힌다.

 

레위기 18장 22절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고 하나님의 도덕적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신다.

 

레위기 18장 28절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니라’

 

동성애는 특히 땅을 더럽히는 범죄이다. 땅은 창세기 1장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통치해야할 피조세계를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이 피조세계를 통치한다. 이것을 언약신학에서 말하는 ‘위임받은 만물통치권’이다. 이것은 통치의 영적인 질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며 땅을 통치할 때, 땅은 우리에게 복종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거역할 때, 땅도 우리를 향해서 거역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한 아담은 땅으로부터 가시와 엉겅퀴를 거두는 저주를 받았다.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되고 기름진 땅을 약속으로 받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땅을 더럽힐 때, 땅은 우리를 거역한다. 마땅히 좋은 열매를 내어야 할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 마땅이 소산을 내어야 할 땅이 철이 된다. 신명기 28장 말씀에서는 ‘하늘이 놋이 되고, 땅은 철이 될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또한 이것을 레위기에서는 땅이 토한다고 말씀하신다. 말씀대로 가나안땅은 성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토했다.

 

이런 법도에서 보면, 국가의 성적타락은 국가의 흥망과 직결된다. 로마가 성적타락으로 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경적 필연이다. 국가가 성적으로 타락하면, 그 국가는 망하는 길로 나아간다. 영국이 가고 있고, 미국도 가고 있다. 한국도 그 길을 갈 것인가?

 

 

4. 바울은 로마서에서 역리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동성애를 지적하고 있다.

 

로마서 1장 27절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결혼에 대해서 창세기 2장 24절에서는 ‘남자가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결혼의 의미는,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연합하여 하나된 존재가 된다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결혼은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을 이루고, 가정을 통해서 서로 돕고 보완하여 온전해지는 것 뿐 아니라, 성적 결합의 의미도 분명히 담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인정하는 정상적 성관계는 ‘남편과 아내가 연합하여 성적 합일을 이루는 관계’밖에는 없다.

 

그런 면에서, 남자와 남자가 생물학적으로 배설하는 기관으로 주어진 항문을 통해서 성적으로 결합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의 질서를 거역하는 일인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혹은 의학적 관점에서도 결코 용도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바울은 동성애를 역리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릇됨에 대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대부분의 성병은 문란한 성관계를 통해서 전염된다. 에이즈환자 중 동성애자들의 비율이 가장 높다. 사회 안에서 동성애자들의 비율에 비해서, 에이즈환자 중에서 동성애자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몸을 역리로 사용한 대가를 몸이 치르는 것이다. 몸은 순리대로 사용해야 한다. 밤낮이 바뀌어 사는 사람들의 건강이 좋지 않는 것처럼, 몸을 역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건강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동성애는 자신의 인격성 뿐 아니라, 몸까지도 파괴한다. 말씀은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로도 실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죄의 제도화

로마서 1장 32절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존 파이퍼 목사님은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미국연방대법원의 판결에 애가를 부르서, 이는 죄를 제도화시킨 것이라고 탄식한다.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동성애는 심판당하는 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한다. 역리가 제도화되면, 역리가 선이 된다. 역리를 역리라고 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죄의 제도화는, 죄의 신속한 확산을 낳는다. 제어장치없이, 안전장치없이, 법을 등에 엎고, 죄가 온 땅에 풀려나는 것이다.

 

성경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의 태도는 곧 하나님의 축복과 심판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였다.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면 나라가 복을 받는다. 왕이 교만하면 나라가 심판을 당한다. 왕 다윗이 격동되어 인구조사를 실시한다. 그러나 백성 7만명이 역병으로 죽임을 당했다. 왕의 범죄로 백성이 심판받은 것이다. 이것을 대표성의 원리라고 한다. 대제사장의 범죄의 무게는 온 백성의 범죄의 무게와 동일하다.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왕도 백성을 대표하는 자이다.

 

삼권이 분립된 현대 국가에서 왕의 역할을 하는 것은 국가의 법이다. 법을 축으로 나라가 돌아간다. 입법, 사법, 행정이다. 입법부는 법을 제정하고, 사법부는 법을 판단한다. 행정부는 법을 시행한다. 국가는 법으로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통치에 거역할 수 있다. 즉 죄를 제도화시키는 것은 국가가 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것이다